2015.5.7

밭에 도착하니 12시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말씀을 암송을 충분히 할 수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5월의 신록이 날이 더할수록 짙어지고 있다.

밭 초입 벙커에 웬 군인 셋이 경계를 서고 있다.
훈련 중인 모양이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루 종일 무료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
화장실 오가는 일 빼놓고는 움직일 일이 없을 것 같다.
몸이 편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밭장 안병덕씨가 왔다.
이곳 벽제텃밭에서는 교장선생님이라고들 부른다.
IMF로 회사를 나온 이후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지난 베테랑이다.
나보다 대한 1년 선배라 선배님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농사꾼 흔적이 엿보인다.
겸손함과 친절함에 이공계 특유의 탐구정신이 매력이다.
나름 내 스스로 나의 농사 멘토로 자리매김 된 분이다.

한 달 전쯤 심었던 감자와 강남콩과 완두콩 그리고 열무가 제법 자랐다.
무당벌레가 잎을 갉아 먹은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띤다.
잎 뒷면에 수북이 낳아 놓은 알이 있어 처리해 주는 것이 일이다.
작물 사이사이에 불청개 잡초들이 기성이다.
명아주, 쇠비름, 냉이...
말이 잡초지 다들 나름 유용한 먹거리이며 약초들이다.
하지만 작물을 기르는 농부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잡풀이다.
이것들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기 전에 제거해 주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
이러저런 일들로 시간이 훌적 지나 도시락 먹을 겨를도 없다.
벌써 여름을 알리는 햇살에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싱그럽다.

늦은 점심을 나누며 선배 이야기에 귀를 귀기울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수료식때 몇몇 교육생들에게 상으로 준 돼지 감자차 한 병을 건네 받았다.
가좌 농장측에서 제공한 것이라 한다.
농부 수업을 들은 소감문을 고도넷 카페에 올려 받은 상이다.
별 것 아니지만 기분 좋게 해주는 상이다.

오늘의 주된 일거리 중의 하나가 쑥을 캐는 것이다.
쑥이 그야말로 쑥쑥 커서 장대가 된 것도 있다.
부드러운 이파리를 중심으로 낫질 하듯이 칼질을 해도 될 정도다.
한 두 시간 쭈그리며 열심하다 보니 허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만 일어나야겠다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벌써 6시가 넘었다.
차선 간격이 길어(30분?) 기다리는 시간이 여간 긴 게 아니다.
이렇게 차를 두번 바꿔 타며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땀을 씻고 나니 온 몸이 나른하다.
하지만 정신이 맑아 기분이 상쾌하다.
얼굴에 흐르는 땀의 매력이다.

2015.11.19
고도넷(고양도시농부 네트워크)
그 문을 노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얼결에 몇 달이 훌쩍 지났다.
밭에 나갔다 올 적마다 일지를 적어야겠다 했는데 작심 삼일도 되지 못했다.
늘 그렇듯 방학이 끝날 때쯤 한 달 일기 하루에 해치워야 하는 심정이다.
감자와 콩으로 시작된 농사(?)가 상추, 고추, 토마토, 호박, 당근, 고구마에 이어 배추, 무까지 왔다.
덤으로 다른 사람들이 기른 땅콩과 야콘 또 토란까지 얻어 먹는 횡재를 누렸다.
최근에는 겨울농사로 마늘과 양파 공동체에 가입해 마늘 씨와 양파 모종을 심었다.
마늘 80평(씨마늘16접/의성&서산 마늘)-1접 100개/1개-6쪽
양파 40평(모종/20판)- 1판 200포인트(개)
(구체적인 데이터는 첨부 파일 참조)
추워지면 보온 비닐 덮어 겨울 지나고 봄이 되어 몇 번 김매기 해주고 나면 6월 추수하면 된단다.

오늘은 배추/무 등 남은 작물 모두 거두어 올 것이다.
설렘과 뿌듯한 마음에 일찍 눈이 떠졌다.
생명을 기르는 자의 기쁨이다.
형제의 3번째 동행이 고마울 따름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John 1:14)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영광을 보는 오늘을 살자.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오늘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나'나 '우리'를 주목하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자.

예수님의 놀라운 영광그 은혜와 진리를 주목함으로 감사하고 온전히 기뻐하는 오늘을 살자.

 예수님 이 땅에 생명으로 빛으로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하고 감사하는 오늘이 되게 하자.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0) 2016.09.23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눅8:22)

Now it happened, on a certain day, that He got into a boat with His disciples. And He said to them, "Let us cross over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And they launched out.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Let us cross over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하루는”- 제자는 오늘을 산다.

어제나 내일을 사는 게 아니다.

함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다.

주님을 좇는다.

건너가자”-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안주하지 않는다.

mobile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호수 저편”- 아마도 틀림없이 복음 전할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1:38) 말씀하시던 주님이시다.

 

이 말씀을 따라 배를 타고 가는 길에 풍랑이 일어 위경에 처했고 두려움 가운데 어쩔 줄 모르는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크신 능력과 사랑의 주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저가 뉘기에?”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흘려듣지 않게 하소서!

그 말씀을 좇아 주님과 함께 행함으로 주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을 높이게 하소서!


///////////////////////////////////////////////////////////////////////////////////////////////////////////////////////////////////////////////////////////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8:23)

It was smooth sailing, and he fell asleep. A terrific storm came up suddenly on the lake. Water poured in, and they were about to capsize.

 

마침(suddenly)

 

예수님 함께 승선하신 배.

잔잔한 호수행선은 순조로웠다.

예수님은 잠이 드셨다.

 

바로 그때 광풍이 내리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제자들은 위태한 지경에 빠졌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에 순풍만 있지 않다.

광풍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제자의 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갑작스런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연은 없다.

모든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위해 허락하신 아픔이다.

마침 내리치는 광풍으로 위태로운 상황들을 주님의 마음과 시야로 받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오늘을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8:24)

And they came to Him and awoke Him, saying, "Master, Master, we are perishing!" Then He arose and rebuked the wind and the raging of the water. And they ceased, and there was a calm.

 

우리가 죽겠나이다(we are perishing!)

 

위험에 처한 제자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나아왔다.

주여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절규였다.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적확한 심정의 토로였다.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응답받는 기도의 모범이다.

무엇보다 절박함이 그 핵심이다.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그 요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음이 기도를 하나마나한 활동이 되게 만든다.

 

주무시고 계실지라도 소리쳐 깨워야 한다.

이 땅에서는 주무셨지만 하늘에 계신 지금은 주무시지 않는 주님이시다.

들으시고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좋으신 주님이시다.

바람과 물을 잔잔케 하시는 모든 능력의 주님이시다.

 

내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은 절박함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나의 힘과 지혜와 경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살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생명을 무릅쓰는 모험이어야 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도를 해야겠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116:6)

철저하게 어리석은 자 (=벼랑 끝에 매달린 자)로 주님을 부르게 하소서!

가난한(=be at the end of my rope심령을 허락하소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며 순종하는고?” 하더라.(8:25)

But He said to them, "Where is your faith?" And they were afraid, and marveled, saying to one another, "Who can this be? For He commands even the winds and water, and they obey Him!"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Where is your faith?)

저가 뉘기에?(Who can this be?)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믿음이 적은 자들아.”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지 제자들을 꾸짖지는 않으셨다.

도전하셨다.

믿음이 적다고는 하셨지만 없다고는 하지 않으셨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최소한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찾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실 만한 사랑과 능력이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예수님을 깨웠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이 겨자씨만한 믿음도 주님은 귀히 여기신다.

주님을 새롭게 경험하고 기이히 여긴다.

저가 뉘기에?”

 

나의 믿음은 어디 있는가?

있긴 있는 건가?

이 말씀들을 통해 볼 때적긴(little하지만 분명 있긴 있다.

힘이 부칠 때면 주님을 찾고 부르는 것이 이 제자들과 같기 때문이다.

이 믿음도 꾸짖지 않으시고 주님은 받아주시고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적다(little)는 것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어찌 보면 없는 것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답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너희 믿음이 적은(little연고니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17:20)

여기에서는 믿음이 적다는 말은 곧 믿음이 없다는 말과 같다.

믿음은 있고 없고 문제이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겨자씨만 할지라도 그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을 일으킨다.

그 생명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은 어디 있는가?

주님께 있고 또 주님 말씀에 있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말씀에서 힘과 지혜를 경험하는 오늘을 살게 하소서!

이 분명하고 단순한 사실을 새롭게 경험함으로 주님과 말씀에 순종하는 오늘을 살게 하소서!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이 육신이 되어  (0) 2016.09.23

+ Recent posts